별순검 시즌1의 김강우
요즘의 나는 별순검 시즌1 에 다시한번 허우적대는 중이다. 통틀어서는 세 번째 복습이지만 각 편마다 장면 하나하나를 외울만큼 자주 본 것도 있다. 예를 들어 자귀나무 편, 백여령 살인사건 편, 불탄시체 편 정도. 뭐 내가 지금 그것에 관하여 얘기하겠다는 건 아니니 이 쯤에서 멈추겠다. 그러니까 이 포스팅의 목적은! 애끼고 애끼는, 내가 허우적 댈 수밖에 없게 하는 인물인, 별순검 시즌1의 김강우. 김순검.
내 취향인지는 몰라도 나는 강우가 히죽히죽 웃는 것보다 이렇게 묵직-해지는 것이 좋다. 요 장면을 특히나 좋아하는 이유는. 음. 본인도 모르게 여진이를 생각하는 강우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 장면이 아닐까 싶어서다. 센 바람이 부니 무의식적으로 등을 지고 진이를 막아주는 강우. 많은 이들이 ‘강경무관님 여진이 좀 더 많이 예뻐해주세요ㅠㅠ’ 하고 있을 때 나는 ‘여진아 강우 좀 다시한번 돌아봐주면 안될까?ㅠㅠ’ 하던 아이였다.
나 아직도 여진이 좋아하오 티를 팍팍 내던 강우가 점점 그 마음을 누그러뜨리고, 감추고, 손에 꽉 쥐고 보이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 때문에 그랬다. 진이에게 장난도 쳐 가며 살살 찌르던 강우가 어느새부턴가(여진이가 경무관 나으리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걸 눈치채고 나서부터일까?) 여진이를 보며 일부러 표정을 굳히고, 센 바람을 막아주고 나서도 그저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"춥다. 날씨가 왜이래?" 마른낙엽 팍팍 떨어지는 말 한마디와 함께 또한 쌩하니 사라져버리는 모습이라니. 그리고 또. 강우가 왜 여진이를 두고 청나라로 유학을 갔어야 했는지 끝끝내 말을 안 해주는게 아쉬웠다. 강우야 이런건 그냥 말 하는거야. 하는거라고! 보는 내가 답답해했더랬다. 여진이를 기생 만들어버릴 뻔 한 그 나쁜놈이 잊을만 하면 등장해서 강우에게 "예쁜 꽃을 꺾지 않고 가꾸었더니 다른 사람이 꺾어갔다" 드립을 쳐 가면서 은근히 "넌 여진이를 강경무관한테 뺏겼어 임마" 뉘앙스를 풍기며 찌를 때에는 더더욱 그랬다. 여진이가 제발 강우가 본인을 두고 청나라로 유학을 갔어야 했던 이유가 뭔지 좀 알아버렸으면 하고 바랬다. 하지만 매분구 살인사건 편 마지막에 검률옹께서 "때론 진실이 더 잔인한 법이다" 라는 말과 함께 강우에게 초점을 맞출 때, 아, 강우 이노마가 여진이에게 과거의 그러한 사실따위 말하지 않겠구나, 짐작을 했더랜다.
아 아련한 강우여진 라인이여. 강우여진이를 생각할때면 아련아련 해지는 것은 강우와 여진이가 붙어있을 때면 늘상 흘러나오는 배경음악도 한 몫 한다. 이러한 점에서 보면 또 작가님들은 결국 강우와 여진이를 잇는건가 하는 짐작도 든다. 물론 별순검 전반부에서는 "당연히 강경무관님 승" 이라는 게 눈에 훤히 보이지만(강우 본인만 빼고) 후반으로 가면 갈수록 경무관님-여진 보다는 강우-여진 쪽이 더 깊어진다. 진이가 강우에게 가지고 있던 오해들이 강우가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하나하나 걷어지기 시작하고. 불탄 시체 편에서는 확실히 여진이가 강우에게 고맙다는 감정을 내비치니까. 뭐 그냥 내 느낌만일 수도 있다. 나님은 책임감 없는 아해.
캐릭터 소개에는 김강우를 열혈청년에 잘 웃고 장난끼 많은 인물로 그려놓았다. 하지만 별순검 전 편을 보는 내내 김강우 라는 인물이 잘 웃고 장난끼 많은 고런 개구쟁이스러운 느낌은 결코 아닌데, 라는 생각이 들었다. 웃기는 잘 웃는다. 그만큼 얼굴도 잘 찌푸리고 윽박도 잘 지른다. 생각해보면 웃는 장면보다는 얼굴 찌푸리고 소리 내지르는 장면이 훨씬 더 많다. 뭐 어떻게 생각해보면 초반부에는 젊은 열혈순검으로 그리려다가 한 회 한 회 지나며 김강우라는 캐릭터를 조금 더 무게감있고, 조금 더 묵직한 느낌의 인물로 바꾼 것일 수도 있다. 누구는 그러더라. 별순검 시즌1은 김강우의 성장기를 보는 기분이었다고. 나도 그 점에 동감한다. 여진이를 향한 마음 면에서도, 수사하는 능력 면에서도, 강우는 성장한다. 아주 많이, 그리고 또 아주 멋지게.
많은 이들은 강경무관님의 우직함과 정직함에 반했을 것이다. 나 또한 그랬으니까. 하지만 난 김강우가 더 좋았다. 웃을 땐 웃을 줄 알고, 화낼 땐 화낼 줄 알고, 장난칠 땐 장난도 치고, 남을 동정할 줄도 알고, 아낄 줄도 알고. 나으리에게 개길 줄도 알지만, 또한 나으리의 모습을 따를 줄도 안다. 그리고 내가 강우를 좋아했던 가장 큰 이유는, 여진이에 대한 끝없는 마음. 여진이가 다시한번 다칠까봐 자신을 원망하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여진이를 알면서도, 굳이 왜 자신이 청나라로 떠나야만 했는지 얘기하지 않는다. 그 사정을 듣고 다시한번 상처받을 여진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.
강우는 수사 면에서도 능력이 꽤 좋았다. 하긴 별순검 아무나 하는거 아니지. 아마 강우가 성숙해질 수 있었던 시점은 자귀나무 편이 아닐까 싶다. 경무관님의 부재 상황에서 단서를 찾고, 사건의 실마리들을 풀어나가고, 그래서 답을 찾고. 그 중심에 강우가 있었다. 자귀나무 편에서의 강우는 지시 받은대로 행하는 이십대 초반의 젊은 순검이 아니었다. 피 묻은 칼을 찾아내고서는 장모에게 버럭 하는 모습의 강우는 멋났다. 자귀나무 아래에 앉아 몇 시간이고 사건해결을 위해 골머리를 싸매던 강우도 멋졌다. 오해 때문에 자신의 부인을 죽인 범인 앞에서 "믿어보지 그랬습니까." 하던 강우의 모습 역시 멋졌다.
시즌2의 선우현도 물론 내 성에 찼던 캐릭터였지만 (시즌3은 안 봤으니..) 시즌1의 김강우에 비해 좀 얕은 캐릭터 였던 것 같다. 작가님들이 현이를 버렸어ㅠㅠ 강우때처럼 캐릭터를 제대로 잡아주지 못했다ㅠㅠ 뭐 시즌2에 대해서는 일단 시즌1에 대한 이야기들을 끝내고 쓸 생각이다. 아, 강우가 그리워지는 날이다. 이 멤버 그대로 시즌4 어때? 너무 택도 없는 소리인가. 하지만 시즌1은 끝맺지 못한 이야기가 너무 많다. 마지막 편인 사미완도 그렇고 강우와 여진이에 대한 이야기도 그렇고. 배순검님의 이야기도 없었다. 강경무관 나으리의 상처는 잘 아물었는지, 그것도 궁금하다고.